돈을 벌고 싶다

마지막 업데이트: 2022년 4월 18일 | 0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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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 탈레반 정권이 들어선 후 아프가니스탄 경제가 붕괴돼 인플레이션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남자들이 에이드 알-아다 첫날 고기를 썰고 있다. 사진=로이터

탈레반 정권 들어선 후 아프간 경제 붕괴

탈레반 정권이 들어선 후 아프가니스탄 경제가 붕괴돼 인플레이션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남자들이 에이드 알-아다 첫날 고기를 썰고 있다. 사진=로이터

이미지 확대보기 탈레반 정권이 들어선 후 아프가니스탄 경제가 붕괴돼 인플레이션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남자들이 에이드 알-아다 첫날 고기를 썰고 있다. 사진=로이터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모하메드 와히드 하이칼랴르(Mohammed Wahid Haykalyar)는 카불 중심지에서 잘되는 식당을 운영했는데, 그곳에서 사람들은 사프란 쌀과 양고기 조림을 먹기 위해 도시 전역에서 몰려 왔다. 그의 월 소득은 3000달러 정도로 아이들의 영어 수업과 방과 후 축구 연습 비용을 지불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요즘, 그조차 가족을 위해 음식을 살 돈도 없다.

하이칼랴르는 "제가 여기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부끄럽다"라며 쌀 한 포대와 콩, 해바라기 기름 한 병을 얻기위해 유엔 식량 배급 센터에 줄을 서 있는 동안 말했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주곤 했지만, 지금은 내가 직접 음식을 구걸하고 있다."

하이칼랴르의 식당은 지난 8월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직후부터 많은 고객들이 아프가니스탄을 떠났고 다른 사람들은 더 이상 외식을 할 여유가 사라지면서 손해를 보기 시작했다. 그는 두 달 후에 사업을 접고 지금은 임시직 노동자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으며, 좋은 날엔 10달러를 벌고 있다.

정부의 경제 운영 능력은 크게 무너졌다. 미국 주도의 군대가 이 나라를 떠나면서 이 공화국을 전복해 들어선 경험이 없는 탈레반 지도부는 고립되어 있고 제재를 받고 있으며, 국가 운영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

수년간 정부 공공지출의 대부분을 충당하던 국제금융지원이 끊겼다. 중앙은행의 90억 달러 규모의 대외자산이 해외에 동결되면서 지난 4월 15.5%를 기록한 초인플레이션을 완화할 수 있는 능력이 차단되고, 개인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은행 시스템의 운영은 거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이후 해외에서 제조된 새로운 아프가니스탄 지폐가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아프가니스탄 지폐조차 붕괴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 너무 피해를 입어서 환전상들이 그것들을 받지 않을 것이다.

민간 시장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무역업자들과 제조업자들은 은행 부문이 대부분 마비되면서 상품과 원자재 수입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아프가니스탄 은행들이 뱅크런을 피하기 위해 현금 인출 제한으로 기업들이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지불이나 심지어 임금 지불을 어렵게 만들었다.

세계은행의 전망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의 국내총생산은 2020년에 비해 2022년 말까지 약 34%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엔은 아프가니스탄 인구의 90% 이상이 충분한 돈을 벌고 싶다 식사를 하지 못하고 있으며, 인구의 거의 절반이 극심한 기아에 직면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족들은 생존을 위해 자녀나 장기를 파는 것에 의지하는 경우도 많다. 수십 년 만에 닥친 최악의 가뭄으로 이 위기를 더욱 악화시켰다.

"현재의 인도주의적 위기는 지난 20년간의 전쟁보다 훨씬 더 많은 아프간인을 죽일 수 있다"고 수십 년간 아프가니스탄에서 지원을 제공해 온 비정부기구인 국제구조위원회는 경고했다.

대부분의 사업가들은 소규모 사업가이다. 많은 사람들이 8월 이후 운영을 중단하거나 중단해야 했다. 미야 이브라힘(Miya Ibrahim)은 밀가루, 식용유, 쌀을 수입한다. 그는 몇 달 동안 돈을 벌지 못했다고 말한다.

카불에서 도매점을 운영하는 이브라힘은 "나는 지금 막막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영업을 계속하기 위해서 남아 있다. 가게의 임대료, 한명의 근로자 월급, 그리고 이곳에서 일하는 네 아들 월급을 내 주머니에서 지불한다."

이브라힘에게 큰 문제는 아프가니스탄에 상품을 수입하는 것이 훨씬 더 비싸졌다는 것이다. "우리의 가장 큰 과제는 은행이다. 아무도 해외로 돈을 보낼 수 없다" 라며 그는 지금 파키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곳에서만 물건을 사오고 있다.

외국 기업과 은행들은 탈레반 지도부를 겨냥한 국제사회의 제재 위반을 우려해서 아프간과의 거래를 폭넓게 피하고 있다. 이것은 이브라힘과 같은 사람들이 더 이상 은행 송금을 통해 수입 돈을 벌고 싶다 비용을 지불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거래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지난 8월부터 신탁에 기초한 수세기 동안 비공식적인 송금 시스템인 하왈라(hawala) 네트워크를 통해 독점적으로 돈을 지불하는 물품 공급업자로 바뀌었다.

하왈라다르(Hawaladars)는 예금을 보유하고, 대출을 제공하며, 무역업자를 대신하여 국제 결제를 한다. 비록 하왈라다르는 그렇게 할 수 있는 허가를 받지 않았지만, 아프가니스탄 중앙은행은 어쩔수 없이 그것을 묵인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슬람 지역에서 활동 중인 하왈라다르를 통해 돈을 보내는 것은 은행 송금보다 더 비싸고 더 위험하다.

아프가니스탄의 주요 하왈라 시장 대변인인 하지 지락은 "탈레반이 점령한 이후 하왈라들은 지난 20년 동안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경제가 지속적으로 돌아가게 하고 있다."

미국과 몇몇 다른 나라들은 하왈라 거래가 규제되지 않고 잠재적으로 돈 세탁에 이용될 수 있기 때문에 하왈라 거래가 불법이라고 생각한다.

국제은행 송금이 결렬되자 캘리포니아와 한국의 협력업체에서 의약품을 수입하는 아지줄라 샤피크는 사업을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물자가 들어오지 않자 그는 자신의 소매 약국에서 팔도록 배급하고 있다.

"만약 내가 모든 물품을 팔기로 결정한, 아마 내일쯤 다 떨어질 것이다." 샤피크씨는 한국에서 수입된 항생제 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는 암과 당뇨병을 치료하기 위한 몇몇 약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약들 중 하나라고 말했다.

유엔과 비정부기구를 통한 식량 배급, 의료, 그리고 기타 다른 것들을 제공하는 외국의 원조로 정부가 할 수 없는 꼭 필요한 일들을 해결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8월 철수 이후 아프가니스탄에 7억 740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약속한 단일 최대 원조국이다. 유엔은 3월에 회원국들로부터 아프가니스탄을 위해 24억 달러를 모금했다. 유엔 기구인 세계식량계획(WFP)은 올해 식량이 필요한 2,300만 명의 아프간인에게 식량을 배급하는 데 필요한 자금에 12억 달러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많은 개인과 비정부기구들은 최근 동부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생한 지진 피해 희생자들을 돕기 위해 돈을 보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몇 가지 성공 사례들이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저명한 기업가인 파힘 하시미(Fahim Hashimy)는 4년 전 운항을 중단했던 국내 항공사 이스트 호라이즌을 되살리고 있다. 이 항공사는 50인승 봄바디어 CRJ 2대로 재취항할 계획이며, 수요가 있을 경우 더 구입하거나 임대할 계획이다. 하시미는 오는 9월까지 국내선과 지역 항공편을 제공하기로 하면서 자신의 항공 사업이 잘 시작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애국자라는 소리는 듣고 싶진 않지만, 우리 나라의 일이다. 우리가 있었던 곳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아프가니스탄 밖에 살고 있지만 텔레비전 방송국을 포함한 아프가니스탄 내에서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는 하시미는 "그것은 우리가 수백만 달러를 투자한 사업이다. 그리고 현 정부는 이전 정부보다 더 환영해 왔다."

탈레반이 정권을 잡은 이후 아프가니스탄은 거의 보편적인 빈곤에 빠져들고 있다. 국제사회의 제재로 기초 생활 물가가 급등하고 가뭄이 식량불안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그는 "탈레반 정부는 이스트 호라이즌 운항 재개에 필요한 모든 허가를 내줬다"고 말했다. 빠진 것이라곤 덴마크 승무원들과 함께 네덜란드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도착할 예정인 두 대의 비행기 중 한 대뿐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몇 안 되는 큰 외국계 회사 중 하나인 아랍에미리트 에티살라트의 현지 자회사와 같은 주요 통신 회사들은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다른 회사들은 제한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비록 광고 수입이 거의 전무하지만, 공화국 시대에 미국의 지원을 받아 설립된 민영 텔레비전 방송국들은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재정적인 어려움은 외국 콘텐츠 방영 금지를 포함한 탈레반의 정부의 제한 조치이다.

새 탈레반 정부가 처음 정권을 잡았을 때, 외국인 투자 유치 목적으로 다른 나라들과 좋은 관계를 원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적극적인 홍보 공세에 나섰고, 특히 여성의 권리가 존중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11월까지, 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 비즈니스 컨설턴트인 알리 와닥(Ali Wardak)은 매일 외국 회사들로부터 아프가니스탄 투자에 대한 조심스러운 문의 전화를 받았다. 주로 미국, 브라질, 중국 등의 투자자들로부터 광업과 석유 및 가스 매장량에 대한 질문이었다고 밝혔다. 아프가니스탄은 보석, 금, 희토류 광물을 포함하여 광대한 광물을 가지고 있다.

"저는 외국 기업들이 들어 올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싶다." 라며, 그는 탈레반 정부가 기업 친화적인 입장을 취하도록 계속 노력하고 있다. "국가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민간 부문을 지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제재, 법치에 대한 우려, 그리고 여자 중학교의 폐쇄 결정과 같은 탈레반 정책들로 많은 외국 회사들이 관심을 잃고 있다.

탈레반 전사였던 하세브 하비비(Haseeb Habibi)는 미군과 연합 아프간군에 의해 수년간 구금된 후, 탈레반의 정권 인수와 함께 8월에 감옥에서 풀려났다. 현재, 그는 외교부에서 경제 협력 부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우리는 우리 국가와 이슬람의 가치를 위해 전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가 그들과 싸웠던 것과 같은 열정으로, 우리는 이제 그들을 환영한다." 라고 여전히 AK-74 소총을 소지하고 있는 그는 말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조국을 위해 옳은 일을 하고 있다."

2001년 이전까지, 아프가니스탄은 20년 전 소련의 침공과 뒤이은 내전으로 인한 파괴로 여전히 휘청거리고 있었다. 제1차 탈레반 정권 하에서 아프가니스탄은 버려진 국가로 여겨졌다.

미국 주도의 침공으로 돈을 벌고 싶다 돈을 벌고 싶다 아프가니스탄은 시장 경제로 전환했다. 건설과 물류, 통신과 미디어 산업도 번영했다. 그러나 경제는 군사 지출과 국제 자금에 의존하고 있으며 외국 원조가 아프가니스탄 GDP의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전쟁과 광범위한 부정부패는 민간 부문의 성장을 가로막았고, 아프가니스탄은 여전히 돈을 벌고 싶다 수입에 의존했다. 불법 아편 재배는 계속해서 경제 활동의 핵심 영역을 담당했다. 지난 4월 탈레반은 공식적으로 양귀비 재배를 금지했다.

현 탈레반 정부 하에서 개선된 것으로 보이는 한 가지는 사업을 하기 위해 약간의 뇌물만을 지불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국경 무역을 하던 트럭 운전자들은 대도시로 통하는 도로마다 많은 검문소를 관리하는 보안군에게 매번 한 트럭당 수백 달러의 뇌물을 지불해야 했다. 지금은 그 수가 훨씬 적다고 기업가들은 전했다. 탈레반의 편을 들어주기 위해 일부 부유한 사업가들은 대신 군인들에게 음식과 옷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고 일부 사업가와 가까운 사람들이 전했다.

아프간 상공회의소연맹의 한 고위 관리가 말하는 민간 추정치에 따르면, 전 공화국 시절에는 부패가 너무 만연해 민간부문이 세관원들에게 신고하지 않은 지불금으로 연간 40억 달러를 지출했다고 한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탈레반 정부는 올해 첫 5개월 동안 약 7억 달러 고모의, 이전에 몰락한 공화국에 버금가는 관세를 징수했다.

그러나 현재의 인플레이션 위기로 기본적인 상품들을 많은 아프간인들이 쉽게 구입하기 힘들다. 세계식량계획(WFP)의 자료에 따르면 5월 한 가구 생활용품 가격은 1년 전보다 41.6%나 올랐다. 식량 가격은 계속 오르고 있는데, 부분적으로는 우크라이나의 전쟁과 세계적인 공급망 붕괴 때문이다.

하비불라 아미니(Habibullah Amini)는 아프가니스탄 전역에 청소 제품을 공급하는 세제 제조 회사를 카불에 소유하고 있다. 그는 15명의 상근 직원이 있는 자신의 사업 운영 비용이 계속 상승하고 있다고 말한다.

연료 가격이 지난 해 동안 두 배로 올랐다. 아미니 씨는 수입 원료는 달러로 지불하고, 세탁용 액체는 아프가니스탄 돈으로 팔고, 그래서 아프가니스탄 돈이 폭락할 때마다 손해를 본다. 그 결과 그의 제품 소매 가격은 계속 변화하고 있다.

공화국이 붕괴된 이후 아미니 대통령은 하왈라다르를 통해 수입된 향수와 다른 원료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 왔다. 그는 종종 한 번에 5만 달러씩 현금으로 그들에게 지불해야 한다.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하기 직전, 그의 회사인 카트라(Qatra)는 매우 잘나가서 아미니는 생산 확대을 위해 새로운 장비에 투자했지만, 아직 사용된 적이 없다. 그는 "지금은 주문이 들어오면 필요한 만큼만 생산한다"고 말했다.

에스파 카리나 간호사 '친언니' 언급에 "누구일까?" 관심.. "동생이라 말 못 한다" (+사진)

에스파 카리나 간호사 '친언니' 언급에 "누구일까?" 관심.. "동생이라 말 못 한다" (+사진)

인기 있는 연예인들에 대한 관심은 그 가족에게까지 이어집니다. 주목받기를 꺼리는 이도, 관심을 즐기는 이도 있습니다.

자신의 형제, 자매와 TV에 출연하는 연예인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연예인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카드입니다. 다만 가족과의 출연은 양날의 검입니다. 관심을 받는 만큼, 사소한 행동에도 비판받기 때문입니다.

인기 걸그룹 에스파 카리나는 지난 9일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에 출연해 친언니를 언급했습니다. '다마고치를 어떻게 아냐?'는 한 스태프의 질문에 "언니한테 (다마고치를) 물려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언니 얘기가 나오면 언니 보고 싶다"며 "언니 직장에서는 제가 동생이라는 걸 아직 모른입니다. 언니가 제가 동생인 걸 말을 안 해서 비밀이다"고 밝혔습니다.

카리나의 친언니는 병원의 간호사로 알려졌습니다. 카리나에 대한 주목도가 날로 높아지는 상황. 그의 친언니에 대한 궁금증 역시 당연합니다.

연예인과 팬들의 거리감이 허물어진 지 오래입니다. 수많은 관찰 예능, 개인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보다 가깝게 소통하는 세상입니다. 친근함을 어필할 창구는 많아졌지만,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조심스러워지기도 합니다.

가족 공개도 마찬가집니다. 때문에 TV 출연이나 정체를 숨기는 연예인 가족들이 대다수. 가수 아이유의 남동생이 대표적입니다. 아이유는 지난해 한 방송에서 "제 동생인 걸 평생 비밀로 하고 살았던 친구입니다. 정말 친한 4~5명에게만 얘기했다고 합니다. 아직 군대에서도 비밀을 잘 유지하고 있다고 하더라"라고 했습니다.

아이유 남동생이란 수식어가 부담됐을 터. 아이유의 발언으로 잘 지켜오던 비밀이 드러나긴 했지만, 연예인 가족을 둔 일반인의 고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연예인의 가족은 일반인입니다. 원하지 않는 집중과 관심. 의도치 않는 루머 등이 정체를 숨기는 이유입니다. 적절한 수준의 비판은 약이 되겠지만, 근거 없는 트집은 상식의 잣대라 말할 수 없습니다. 유명세로 돈을 벌고 있는 것은 일반인 가족이 아니라 연예인일 뿐입니다.

KBS2TV '자본주의학교'(연출 최승범)는 10대부터 MZ세대까지 요즘 애들의 현실적인 경제스터디를 담은 예능프로그램으로 10대를 위한 경제교실 '방과후 자본주의학교', MZ 세대를 위한 재테크 '불나방 소셜투자클럽', 맛 칼럼리스트이자 장사의 신으로 알려진 김유진 대표와 개그맨 김준현의 지원아래 시작되는 3040 생계를 위한 창업도전기 '자본주의 식당'이 방송된다.

오늘(17일) 방송되는 '자본주의식당'에는 첫번째 창업지원자로 나선 지연수가 한식당 오픈을 희망해 시선을 사로잡는다.

지연수는 "창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이혼 후에 처음 했었다. 조금이라도 돈을 빨리 벌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라고 고백한 후 처음에는 저조했던 자신감이 이제는 가족의 응원 덕분에 충만해졌다고 밝혀 한결 단단해진 마음을 드러냈다.

이어 가장 자신 있는 메뉴로는 한식을 꼽았다. 지연수는 "한식에 자신이 있다. 못하지 않는다"라고 말해 김유진 대표의 신뢰를 샀다. 이어 "내가 만든 음식 중에 신김치 얹어서 하는 김치말이 국수는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이 좋아해줬다"라고 말한 후 "육아에 찌든 엄마들이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하고 싶다"라고 구체적인 창업 계획을 밝혔다. 이에 김유진 대표는 "주먹밥도 같이 하면 좋을 거 같다"며 메뉴 팁을 선사한데 이어 김준현은 험난한 인생을 살고 있는 지연수를 위해 계란국수를 선사해 따뜻한 정을 느끼게 했다. 향후 지연수가 김치말이 국수와 주먹밥이 메뉴로 있는 식당을 열수 있을지 기대를 모으게 한다.

"죽을만큼 힘든데, 사랑해" 결혼 선택한 김지혜

김지혜는 지난 9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티빙 '결혼과 이혼 사이' 종영 소감을 밝혔습니다. 장문의 글로 마음을 털어놨는데요.

김지혜는 "참 감사한 시간이었다. 저에게 정말 많은 생각과 결정의 갈림길에서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게 도와주신 많은 분들 감사하다"라고 인사했습니다.

이어 "둘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본 적이 없었기에, 싸우는 장면에선 같이 울기도 하고 모르던 내 모습에 놀라서 반성한 적도 많았다"라며 "남편의 문제가 상당부분 차지하는 것처럼 나와서 조금 속상하긴 하다. 저의 나쁜점이 많이 비춰지지 않았던 것 같다"라고 설명했죠.

최성욱과 이혼에 대한 솔직한 마음도 드러냈습니다. 그는 "보이시겠지만 저희는 너무 많이 사랑한다. 이혼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죽을만큼 힘든데 이혼하기 싫어서 방법을 찾고 싶어 출연하게 됐다"라고 했죠.

끝으로 "전 행복한 결혼을 다시 얻었다고 생각한다"라며 "저희는 또 수없이 싸우고 사랑하겠다. 앞으로의 일은 저도 잘 모르겠다. 결혼과 이혼 사이를 여전히 걸어가겠지만, 그 마지막은 아름다운 부부이길 간절하게 바란다"라고 바람을 전했습니다.

한편 김지혜와 최성욱은 지난 2019년 결혼했으나 최근 '결혼과 이혼 사이'에서 이혼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혀 안타까움을 안겼는데요. 프로그램 최종 선택에서 '결혼'을 선택했습니다.

이하 김지혜 인스타그램 글 전문.

저에게 정말 많은 생각과 결정의 갈림길에서 올바른 결정을 할수 있게 도와주신 많은 분들 감사해요

어떤말로 제 마음을 전해드려야 할지 고민이 참 많았어요 :)

마냥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날들이었어요

초반부터 예상치 못한 너무나 뜨거운 반응과 악성댓글에 힘겹기도 했고, 응원댓글에 맞아 내 문제가 아니었어 하고 위로가 되기도 하고..

참 사람마음이라는게 가볍더라구요..

이를통해 배워나가는 점도 참 많았던 거 같아요

중요한건 사람들의 ‘시선’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인데 말이죠..

둘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본 적이 없었기에, 싸우는 장면에선 같이 울기도 하고 모르던 내 모습에 놀라서 반성한 적도 많았어요

부부의 문제는 결코 한쪽의 잘못으로 이뤄지는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문제가 상당부분 차지하는 것처럼 나와서 조금 속상하긴 하지만.. 저의 나쁜점이 많이 비춰지지 않았던거 같기도 해요..

결국엔 둘다의 문제였다는 걸로 생각이 닿았어요.

보이시겠지만 저희는 너무 많이 사랑해요..

죽을만큼 힘든데 이혼하기 싫어서 방법을 찾고 싶어서 출연을 하게 됐어요..

남편의 활동에 안좋은 영향을 끼칠것도 알고

제 사업에도 지장을 줄수 있는 걸 알면서도 출연했어요

“저 여자 팔이피플이라 홍보하러 나왔어”

저희의 안좋은 결혼생활을 보여주면서 까지 돈벌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제 인스타를 보셨던 분들은 아시겠지만 행복한 모습을 많이 보여드리며 홍보를 하면했지, 보여지고 싶지 않은 부분으로 홍보할 생각없어요..

대이직의 시대 4: 퇴사 일발 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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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A는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이 아니다. 의대를 졸업하면 의사가 될 수 있고, 로스쿨을 졸업하면 변호사가 된다. 하지만 MBA는 졸업한다고 해서, 어떤 전문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대신 MBA는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커리어 목표를 달성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우수한 MBA 프로그램을 졸업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스펙으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아마존 같은 빅테크 기업, 월가의 은행들, 그리고 전략 컨설팅 기업들은 매년 MBA 졸업생을 대상으로 채용한다. 모두 나처럼 일반적인 커리어를 밟아온 사람에겐 쉽게 주어지지 않는 기회들이다. MBA는 그 자체로는 목표가 될 수 없지만, 목표를 달성하는데 훌륭한 수단인 셈이다.

다만, MBA 자체가 커리어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유명 MBA 돈을 벌고 싶다 프로그램에서만 수천 단위 졸업생이 배출된다. 그중에서 큰 기업의 경영진이 되거나 창업에 성공하는 인재는 한 줌에 불과하다. MBA 프로그램에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원서와 면접을 통해 반복적으로 묻는다.

1) 향후 커리어의 목적이 무엇이고,

2) MBA 프로그램이 그 목적을 달성하는데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으며,

3) 너는 커뮤니티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한마디로, 니가 얼마나 커리어에 대해 진심으로 고민하고 있는지를 보여달라는 돈을 벌고 싶다 것이다. 그리고 그 답을 통해, 학교 측은 지원자가 될성싶은 떡잎인지를 가려낸다.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MBA 프로그램이 내게 얼마나 필요한지를 반복해서 답하는 과정에서, MBA 프로그램이 나에게 맞는지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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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A 프로그램을 나에게 적용시켜 보니, 이런 질문이 되돌아왔다.

1) 좀 더 빡센 직장(투자은행이나 펀드)으로 옮겨,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은가?

2) MBA 내에서 쌓은 인맥을 활용해 컨설턴트 / 창업을 하고 싶은가?

3) 아니면 일반 기업으로 옮겨 관리자로써 성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인가?

객관적으로 바라본 지금의 나는 이런 사람이었다.

1) 게으르고

2) 숫기가 없으며

3) 어수룩한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벌면 좋긴 하겠지만, 영혼을 갈아 넣어서라도 커리어적으로 돈을 벌고 싶다 성공하겠다는 욕망은 없다. 그러기엔 어느 정도 나이를 먹었고, 가정이 있으며, 배때지에 기름기가 꼈다. 애초에 내가 영업이나 네트워킹을 잘했더라면, MBA를 하지 않고도 현 직장에서 성공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곁에서 지켜본 임원들처럼 머리가 잘 돌아가지도 않고, 리더십을 갖추고 있지도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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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머릿속으로만 공회전하는 것보다, 실제로 부딪혀보고 겪어봤을 때 알 수 있는 일이 더 많다. 무작정 안된다고 스스로를 제한할 게 아니라, 그 시간에 뭐라도 해보는 게 낫다. 그런 의미에서 MBA 프로그램에 지원한 것은 굉장히 잘한 일이다.

토끼는 굴을 두 개 판다

다만, 무조건 MBA를 해야겠다는 확신이 선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MBA 결과가 나오기 전 몇 달 동안, 본격적으로 이직에 지원해 보았다. MBA와 이직을 투 트랙으로 준비해 본 뒤, 오퍼를 받은 학교와 회사를 비교해 보기로 한 것이다.

이직할 회사와 포지션을 선정하는데 세 가지 기준을 세웠다.

첫째, 현재 살고 있는 지역에 위치한 회사일 것.

둘째, 지금 하는 일보다는 재밌어 보이는 포지션 일 것.

셋째, 그 일을 함으로써 뭔가 배울 점이 있고, 앞으로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것.

MBA 프로그램을 하는 것에 가장 큰 문제는 비용이었다. 경제적인 부분 (2억에 달하는 학비, 2년 치 연봉) 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나를 위해 주거지를 옮겨야 한다는 것이 큰 부담이었다. 마당 딸린 주택에서 시부모님의 도움으로 아이 둘을 키우다가, 좁은 아파트로 가서 우리 부부 힘으로만 애들을 키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이직을 한다면, 반드시 집에서 출퇴근이 가능한 곳으로 옮기고 싶었다.

두 번째 조건은 좀 더 까다로웠다. 일반적으로 회계법인 출신들이 가장 많이 이직하는 포지션은, 인더스트리(일반 기업)의 회계팀이다. 직무 연관성이 겹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회계 자체보다는 정보 분석 및 활용 쪽에 좀 더 재미를 느꼈다. 그래서 회계나 재무 분야를 벗어나, 뭔가 새롭고 다른 일을 배워보고 싶었다. 학교엔 가지 못하더라도, 이직을 통해 재미가 있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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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내가 가고 싶은 포지션일수록, 다시 말해 회계분야로부터 멀어질수록, 나의 직무능력과 경력을 인정해 줄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다. 어차피 새로 업무를 가르쳐야 할 실무자급에서는, 과거 경력 연관성을 적게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나 같은 중간관리자들은, 전혀 다른 인더스트리로 이직하기가 훨씬 어렵다. 웬만큼 인내심 있는 회사라 하더라도, 일할 줄 모르는 직원을 매니저로 뽑아 기초부터 다시 가르치긴 힘들기 때문이다.

세 번째 조건은, 성장 가능성이다. 나는 현재의 수입에 대해선 큰 불만이 없는 상태였다. 따라서, 이직하려는 포지션의 연봉이 비슷하거나 조금 낮은 것은 괜찮았다. 대신, 그 일을 내가 잘하게 됐을 때 그에 합당한 보상이 주어지길 바랐다. 금융에서 성과급이 지급되고, 테크기업에서 스톡옵션이 주어지는 것 같은 업사이드가 있는지를 따졌다.

대이직의 시대는, 나 같은 구직자에게는 큰 기회였다. 업계 전반에 이직자가 넘쳐나다 보니, 이곳저곳에서 결원이 발생했다. 결원이 발생한 회사는 급하게 이직자를 뽑는 과정에서, 기존에는 고려하지 않았을 나 같은 사람에게까지 기회가 주어지기도 한다.

최종적으로 세 회사와 이직 협상을 했다.

1. 대형 사모펀드의 미들오피스 매니저

2. 스타트업의 가치 평가 매니저

3. 은행 포트폴리오 매니저

첫 번째 회사는 업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펀드였다. 지원 과정에서

1) 현재의 연봉보다 낮고 (이름값을 고려했을 때, 깜짝 놀랄 만큼 낮았다)

2) 업무량은 지금보다 크게 늘어날 것이며

3) 결정적으로 프론트오피스 (투자쪽)로 이직할 기회가 원천적으로 차단

. 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겉보기엔 그럴듯하지만, 내실은 없는 오퍼였던 셈이다.

두 번째는, 한 스타트업에 전문가로 참여하는 것이었다. 대우도 나쁘지 않고, 잘 되었을 때 가장 큰 대박(스톡옵션)을 노려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면접 과정에서, 내부 문제 등으로 인해 전임자들이 지속적으로 갈려나가는 것을 확인했다. 회사 쪽도 나의 경력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해 오퍼까지 가지 못하고 흐지부지되었다.

세 번째는, 내가 봤을 때 가장 균형이 잘 잡힌 곳이었다. 기존에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뱅킹 업무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데다가, 내게 주어진 직급이나 대우가 좋았다. 기존의 경력 대부분을 인정해주면서도, 새로운 일을 기초부터 배울 수 있게 된 셈이다. 게다가 해당 사업부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팀원 대부분이 지난 2-3년 안에 승진했다는 것도 플러스였다.

세 번째 은행으로부터 오퍼를 받기까지는 긴 우여곡절이 있었다. 뱅킹 관련 경력이 전혀 없었기에, 최초 지원했던 다른 포지션에는 합격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를 면접했던 임원 중 한 명이 나에게 호의를 갖게 되었고,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일(자산유동화)과 업무 유사성이 좀 더 겹치는 새로운 포지션을 만들어 주었다.

다만, 팀장은 나의 업무능력에 대해 의문이 있었기 때문에, 실기 면접을 치르게 되었다. 복잡한 모델링과 재무분석 능력 전반을 평가받았다. 그 시험을 무난하게 치렀기 때문에 최종 오퍼를 받을 수 있었다. 최초 지원부터 최종 오퍼를 받기까지 무려 4달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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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이 나에게 호의를 갖게 된 것은 사실 순전한 우연이다. 그 임원은, 내가 다니던 회사의 관리자 한 명과 막역한 사이였다는데, 그 관리자가 나에 대해 호평을 했기 때문에 내게 호감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 관리자를 전혀 알지 못한다).

다시 말해, 우연히 나를 좋게 말해준 친구가 있어서 날 뽑았다는 거다. 여담이지만, 나는 미국에서 처음 취직할 때도 우리 학교 출신 한 명이 그해엔 무조건 자기 학교에서 한 명 뽑아달라고, 경영진에게 강짜를 부려서 취직하게 된 낙하산 출신이다. 취직과 이직 같은 큰일에서는 때로,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알지 못하는 이유로(예를 들면 회사가 사람을 얼마나 급하게 뽑으려 하는가, 어떤 인맥이 있는가 같은) 결정이 내려지기도 하는 법이다.

은행으로부터 이직 오퍼를 받을 때쯤, 지원했던 MBA 프로그램들이 입학 / 불합격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중 목표로 했던 곳 한곳으로부터는 상당한 장학금 (3만 불) 보조도 받게 되었다. 이직과 MBA 진학 사이에서 본격적인 고민이 시작되었다.

추신

딴지스 여러분 덕에, 『재무제표가 만만해지는 회계책』 이 출간되었습니다. 이전에 쓴 딴지 연재물을 확장하여, 이때다 싶어 열쒸미 공부, 정리하여 낸 책입니다. 아마, 현직 회계사 중, 저만큼 회계공부를 싫어했던 회계사는 거의 없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저만큼도 공부를 안 했다면 못 붙으셨을 테니까요). 회계 공부를 싫어했던 제가 스스로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계실 독자분들 상정해 쓴 책이다 보니 재밌습니다(아마도. ). 그동안 회계 공부가 하기 싫었다거나, 회계에 관심이 없었던 독자분들(사실상 전원)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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