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분석의 역사

마지막 업데이트: 2022년 1월 16일 | 0개 댓글
  • 네이버 블로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원장

데이터 시대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통계학의 역사는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학자들은 보통 17세기 중반 무렵을 그 시작으로 보지만 통계학이 나름의 학문으로 인정받고 대학에 독자적인 전공으로 자리 잡은 것은 20세기 이후부터였다. 다른 분야와 비교해 볼 때 통계학은 매우 젊은 학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20세기가 되기 전까지는 통계조사도 없고 데이터도 없었을까? 물론 그렇지 않았다.
구미 각국에서는 19세기 전반기에 이미 각종 통계조사가 활발해졌고 데이터가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덕분에 그 시기는 역사 연구자들로부터 ‘통계에 대한 열광의 시대’라는 특별한 이름까지 얻었다. 하지만 아무리 많아도 데이터만으로는 과학이 되기 어려웠고 그 데이터를 분석하기 위한 체계적인 이론과 방법은 19세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서야 나타났다. 즉 20세기를 학문으로서의 통계학의 시대라고 한다면 19세기를 데이터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겠다.
비록 아직 데이터가 정밀한 이론이나 분석법과 만나지는 못한 시기였지만 19세기는 통계를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이 등장했던 흥미진진한 시기였다. 데이터가 풍성하게 만들어지면서 사회 속에서 그 데이터의 역할을 둘러싼 논쟁도 많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당시가 영국을 시작으로 산업혁명이 진행되던 시기였으며 19세기가 시작되기 직전인 1789년에 프랑스대혁명이 있었던 것을 떠올려보면 통계 데이터는 혁명의 시대가 낳은 산물 가운데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 당시에 데이터가 맡은 역할은 변화와 혼란의 와중에서 시대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과학적인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특히 당시 사람들이 주목했던 통계는 자살, 범죄, 빈곤, 공중보건 등 사회의 어두운 모습을 드러내는 통계들이었다.
19세기 전반기 데이터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 당시의 열광적인 분위기가 마치 ‘빅데이터의 시대’라고도 불리는 오늘날의 분위기와 흡사하다는 느낌까지 받게 된다. 그러고 보면 산업혁명과 정치혁명이라는 이중혁명의 시대에 데이터가 맡았던 역할과 흔히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불리는 오늘날의 데이터가 하는 역할을 서로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롭겠다.

거칠게 요약해보면 통계학의 역사는 평균을 강조하는 흐름과 상관이나 회귀분석처럼 차이와 변화에 더 주목하는 흐름이 서로 시소를 타듯 오르내리며 진행되어 왔던 것 같다.
그 가운데 데이터에 대한 열광의 시기였던 19세기 전반기는 평균이 더 강조되는 편이었는데 그 시대를 대표할 사람을 꼽는다면 벨기에 사람인 케틀레(A. Quetelet, 1796-1874)를 들 수 있다. 오늘날 그는 비만을 측정하는 체질량지수(BMI index)를 만든 사람으로 겨우 이름이 남아있지만 통계학의 역사에서는 1820년대부터 거의 반세기 동안 유럽 통계를 지배한 중요한 인물로 기록된다. 특히 그는 이전까지 천문학을 비롯한 자연과학 데이터를 분석하는데 이용되던 확률 이론을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 적용함으로써 사회에 대한 연구를 과학적으로 만들어보려는 야심찬 시도를 했던 사람이었다.

케틀레가 남긴 것 중에 사회 연구와 통계학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평균인(average man)’이라는 개념이다. 평균인이란 많은 사람들로부터 측정한 신체적, 정신적인 특성들을 평균해서 만든 ‘사람’을 일컫는다. 물론 처음에는 가상의 존재였지만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고 통계로 뒷받침된 덕분에 평균인이라는 개념은 금세 널리 퍼졌고 사회를 대표할 수 있는 전형적인 존재로 떠올랐다. 이전까지 한 집단이나 사회, 또는 나라를 대표하는 존재는 왕이나 정치가, 성직자처럼 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케틀레가 제시한 평균인은 특출한 인물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중간에 있는 보통사람이었다. 평균인은 사람들의 신분이 엄격히 나누어져 있어서 귀족과 평민, 노예를 같은 인간으로 간주하지 않았던 시대라면 나올 수 없는 개념이었고 통계데이터가 널리 생산되지 않는 시대였다면 역시 태어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평균적인 한국인의 모습과 삶’을 보도하는 기사를 만나게 된 것은 케틀레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우리나라 통계청에서는 5년 주기로 ‘생활시간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는데 2015년에 발표한 ‘2014년 생활시간조사’가 가장 최근의 자료다. 그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평균인’은 하루 TV시청에 1시간 55분, 교제활동에 43분, 종교, 문화, 스포츠 활동에 44분을 사용한다고 한다. 우리는 거울을 보듯 그런 통계와 자신을 비교해보고 안도하거나 불만스러워하거나 아니면 거꾸로 거울을 욕하듯 통계를 비난하곤 한다.

19세기 통계, 평균인에서 우생학으로

평균이라는 개념을 유명하게 만들었지만 케틀레 자신은 평균적인 사람과 거리가 멀었다. 그는 천문학, 기상학, 사회과학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했을 뿐 아니라 유럽 곳곳에 다양한 과학단체를 만들어 국제적인 교류에 앞장선 인물이었다.
19세기 전반, 각종 통계조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하면서 유럽에서는 지역이나 나라별로 통계 교류도 활발해졌다. 그런데 서로 만드는 통계도 다르고 같은 통계라 하더라도 정의나 조사방법이 제각각 달랐기 때문에 통계를 비교하기가 어려웠다. 즉 표준화가 이루어지지 않고는 통계의 타당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리하여 통계학이 학문으로 자리 잡기 훨씬 이전인 19세기 중반에 각국의 통계전문가들이 만나 정보를 교류하는 모임이 시작되었다. 1853년부터 2년마다 유럽 대도시들에서 정기적으로 열린 국제통계회의(ISC)가 그것인데 첫 모임이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열린 이유는 그 모임을 만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케틀레였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19세기 통계학의 역사 전체가 케틀레의 시대일 수는 없었다. 인간과 사회를 중심으로 간략히 요약해본다면 19세기 통계의 역사는 ‘평등주의’에서 시작하여 ‘우생학’으로 나아갔다고 정리할 수 있다.
말할 나위도 없이 우생학은 사람들을 우수한 집단과 열등한 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고 보고,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서 열등한 사람들의 결혼과 출산을 막고 우수한 집단의 수를 늘림으로써 더 좋은 사회와 국가를 만들어보려는 운동이었다.
우리가 지금 우생학이라는 이름조차 듣기 어려워진 것은 나치가 홀로코스트의 과학적 논리로 우생학을 이용했던 탓인데, 그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우생학은 구미 각국에서 어엿한 과학의 대접을 받았었다. 시대 분위기가 그렇다보니 현대통계학 역시 우생학과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게 되었다.
19세기 후반 이후부터 통계학을 이끌었던 영국의 골턴(F.Galton)이나 피어슨(K. Pearson), 그리고 피셔(R. A. Fisher)와 같은 인물들이 모두 당대를 대표할만 한 적극적인 우생학주의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19세기 후반에 우생학이라는 이름을 만들고 영국 우생학운동의 대표자가 된 골턴이 회귀와 상관이라는 개념을 만든 것도 평균을 강조한 케틀레에 대한 뚜렷한 반발 때문이었다.

빅데이터의 시대, 새로운 사회물리학의 시대

케틀레의 기술 분석의 역사 평균인은 자연과학자들이 많은 데이터를 모으고 그 데이터들의 평균값을 구하여 물리적인 참값을 찾으려 한 것과 마찬가지 시도였다. 자연현상을 관측한 데이터의 중심에 단일한 참값이 있듯이 사회에서도 중심의 역할을 하는 존재가 실제로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양적인 데이터를 가지고 사회를 파악하려는 노력으로 인해 그는 계량적인 사회연구, 그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사회물리학(social physics)’의 대표자가 되었다.
케틀레가 데이터를 가지고 사회를 과학적으로 연구할 수 있다고 본 것은 데이터가 많아질수록 개인의 다양한 특성은 사라지고 집단의 특성만 부각되기 때문이었다. 그는 많은 데이터에서 드러난 규칙성으로부터 자연과학의 법칙과 유사한 사회의 법칙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케틀레를 비롯한 19세기의 선구자들 덕분에 오늘날 기술 분석의 역사 우리는 통계조사를 통해 정치, 사회,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아주 많은 것들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표본을 대상으로 하는 통계조사로는 제대로 알아내기 어려운 문제들도 여전히 많다. 성매매 같은 문제가 대표적이다. 통계조사 기술 분석의 역사 담당자가 아무리 비밀을 보장한다고 약속한들 성을 판매하는 쪽이나 구매하는 쪽이나 제대로 답을 할 리가 없다. 통계청이나 조사기관이 알아내기 어렵다면 경찰이나 국세청처럼 방대한 정보를 가진 기관들은 우리나라 성매매 시장의 판매자가 얼마나 되고 구매자는 얼마나 되며 어느 정도의 돈이 흘러 다니는지 알고 있을까? 지하경제에 해당하는 밀수나 마약 등과 함께 성매매에 대해서는 경찰과 국세청도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방송에서 성매매업소 업주들이 이용한다는 데이터베이스를 찾아내서 보도했다. 그 데이터베이스에는 매수자 남성들의 전화번호와 각종 정보가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거기에 실린 전화번호 수가 무려 사백만 건이나 된다고 한다! 통계학을 공부하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은 그처럼 엄청난 구매자 수만이 아니다. 국가기관도 알기 어려운 정보를, 그것도 대단히 민감한 개인정보를 뜻밖의 곳에서 정밀하고도 체계적으로 모아 관리하고 이용하고 있었다는 점이 더욱 놀랍다.
빅데이터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이전까지의 데이터로는 알 수 없었던 문제에 대해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점이라고 한다. 데이터의 규모가 커졌으므로 집단에 대해 더 총체적으로 알 수 있게 된 것은 물론이고 작은 집단, 궁극적으로는 특정 개인의 생각과 행동까지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사실 소집단이나 개인까지 세밀하게 알아내는 것은 통상적인 표본조사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케틀레의 시대와 비교해볼 때, 빅데이터를 이용한 오늘날의 사회물리학은 집단의 움직임과 개인의 모습을 모두 들여다보는 새로운 과학이라고 불러도 되겠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개개인으로서는 누가 자신의 데이터를 어떻게 저장하고 어디에 활용하는지 까맣게 모른다는 점이다. 성매매업소 업주들이 만들어 이용했다는 데이터베이스는 오늘날 데이터의 생산과 이용 실태, 무엇보다 빅데이터시대 개인의 모습을 잘 드러내준다. 딱하게도 그 모습은 벌거벗은 초라한 모습이다.

(35220) 대전광역시 서구 한밭대로 713(월평동) 통계센터 통계교육원 | E-mail : [email protected]
Copyright(c)2014 Staticstis Training Institute. All Rights Reserved.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장 김재수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원장 김재수

“TRUST KISTI, 신뢰와 혁신”

안녕하십니까?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원장 김재수 입니다.

디지털 전환이 사회경제 전 분야의 사명이 되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의 도래로 과학기술 혁신이 거듭되며, 디지털 뉴딜과 언택트 문화가 확산됨에 따라 우리 사회가 디지털 전환 시대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정보 분야의 대표 연구기관인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은 과학기술 인프라를 토대로 오픈사이언스를 이끌고, 세계적 수준의 슈퍼컴퓨팅과 데이터 분석 기술로 디지털 기반 R&D혁신을 선도함과 동시에 신성장 동력을 견인합니다.

또한 이러한 핵심 역량을 강화하며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임무와 역할에 충실함과 동시에 국가·사회 현안 해결과 우리나라의 R&D 혁신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아울러, “TRUST KISTI”를 선언하며 새로운 내일을 향해 나아가려 합니다.

글로벌 현안 이슈 및 고객과 국민의 요구를 적시에 대응하고(Timely) 신뢰받는(Reliable) 기관으로 자리 매김하고, 과학기술정보·데이터·슈퍼컴퓨팅·데이터분석의 유기적인 지원 체제를 구축(Unified)하며, 과학기술 혁신(S&T innovation)과 더불어 투명한(Transparent) 디지털경영을 실천하겠습니다.

산·학·연·정 그리고 국민 여러분과 함께 과학기술인프라, 데이터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재수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원장

기술 분석의 역사

이미지

이미지

이미지

이미지

이미지

스티븐 호킹 박사가 돌아가셨다.

그는 루게릭병을 극복한 장애극복의 아이콘이며, “아인슈타인 다음가는 천재물리학자”로 불릴 만큼

블랙홀과 우주론 분야에서 놀라운 업적을 남겼다.

온 몸은 마비되었지만 그의 의심하고 탐구하는 과학적 지성은 막을 수 없었다.

그 덕분에 숭배의 우주는 과학의 우주가 될 수 있었다.기술 분석의 역사

경제와 경영, 금융분야에도 많은 천재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 덕분에 시장과 상품분석법을 배워 의사결정에 활용하고있다.

가격만을 분석하는 기술적분석은 400년의 역사를 가졌고,

가격과 가치를 함께 분석하는 기본적분석도 겨우 100년이 안되는 역사를 가졌다.

우주에 대한 관심에 비해 턱없이 짧은 역사다.

의사결정은 감에 의존한 예술적 투자와 논리에 입각한 과학적투자가 섞여 있다.

예술에 기반한 투자가 틀렸다고 할 수는 없고, 과학적인 투자가 옳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다만 피카소의 기법은 일반인이 따라할 수 없는 예술의 영역이지만,

에디슨의 영역은 제대로 배우면 모두가 할 수 있는 과학의 영역이라는 차이가 있다.

버핏의 투자기법을 배워서 우리가 활용할 수 있다면 그의 분석은 배울 만한 가치가 있지만,

그의 투자가 그만의 감에 기반한 방식이라면 우리는 피카소의 작품을 즐기듯 그의 투자를 즐길 수 있지 배울 수는 없을 것이다.

서점의 재테크 코너에는 투자를 배우려는 사람들을 위한 수많은 책들이 있다.

많은 책들이 성공투자경험을 이야기하고, 당신도 할 수 있다며 분석기법을 알려준다.

여전히 유명한 기술적분석 기법에 엘리어트 파동분석법이 있다.

결론을 이야기하면 이 기법은 “그때도 틀렸겠지만 지금도 여전히 틀린” 과학의 외피를 쓰고 있는 예술일 따름이다.

미국의 랄프 넬슨 엘리어트가 1938년 주장한 이 구시대의 모델은 왜 아직도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세상은 이해하지 못할 일로 가득 차 있고, 인류는 이를 신의 뜻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신이 부여한 세상의 질서를 찾는 과정에서 천문학과 물리학이 발달했다.

엘리어트도 신이 부여한 아름다운 질서, 절대적인 기술 분석의 역사 질서를 수학이라는 틀을 통해 보았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해바라기나 솔방울, 파인애플 등은 모두 피보나치 수열(1,1,2,3,5,8,13 등)을 따른다는 것이다.

세상이 가장 조화로울 때는 그 비율이 1 : 1.618이고 이 질서로 우주가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비율을 따를 때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비례도, 최후의 만찬도 이를 따르고,

건축물인 피라미드와 파르테논신전도 이를 따른다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일부 광신도들은 신용카드도, 담뱃값도, A4 용지도 모두 황금비율을 따른다고 주장했다.

1.618은 Golden Number 즉, 신의 뜻으로 만들어진 수이며 시간과 공간에 관계없이 절대적이며,

주식이나 채권과 같은 금융상품의 가격도 이 패턴을 따른다는 것이었다.

필자 또한 1996년 처음으로 차트를 읽는 법과 각종 기술적지표를 접했다.

우주의 생성과 생물의 진화가 황금비율로 구성되어 있다는 엘리어트 파동분석은 경이롭기만 했다.

비밀을 찾으면 엄청난 보물이 존재할 것 같아 관련 책과 소프트웨어를 사서 열심히 공부했다.

절대적이라는 원칙은 쉽게 무너졌고, 해석방법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예외투성이였다.

숫자로 되어있어 과학적인 것처럼 보이는 황금비율은 사실일까?

A4용지는 1 : 루트2인 1:1.414.를 따른다. 비너스상도 다비드상도 황금비율이 아니다.

인체비례도, 최후의 만찬, 피라미드, 파르테논신전 모두 황금비율과 기술 분석의 역사 기술 분석의 역사 차이가 난다.

시장의 비밀도 없었고 보물은 신기루 속에만 존재했다.

바보처럼 한참을 오르고 난 후 난 이렇게 외쳤다. “이 산이 아닌게벼.”

필자 뿐 아니라 많은 투자자들은 왜 이런 실수를 할까?

사람들은 “어,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인터넷에서 봤어요.” “사람들이 맞다고 하던 데요”라고 말한다.

인공지능은 어떻게 발달해왔는가, 인공지능의 역사

1950년 영국수학자 앨런 튜링은 ‘계산 기계와 지능(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라는 논문에서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지 테스트하는 방법, 지능적 기계의 개발 가능성, 학습하는 기계 등에 대해 기술하였습니다. 이 기술을 현실화한 튜링머신은 존 폰 노이만 교수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어 현대 컴퓨터 구조의 표준이 되었으며. 세간에서는 이것을 인공지능 역사의 시작으로 보고 있습니다.

앨런튜링

앨런튜링

한편 미국의 신경외과의 워렌 맥컬록(Warren Mc Cullonch)과 논리학자 월터피츠(Walter Pitts)가 전기 스위치처럼 온, 오프 하는 기초기능의 인공신경을 그물망 형태로 연결하면 사람의 뇌에서 동작하는 아주 간단한 기능을 흉내 낼 수 있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증명하였습니다. 또한 헵은 생물학적 신경망 내에서 반복적인 시그널이 발생할 때 신경세포들은 그 시그널을 기억하는 일종의 학습효과가 있음을 증명하였습니다.
이러한 연구들은1958년 코넬대 심리학자 프랭크 로센블래트의 연구에 결정적 영향을 주게 되었고, 이 연구에서 퍼셉트론(Perceptron: 뇌 신경을 모사한 인공 신경 뉴런) 탄생하게 됩니다. 이로써 신경망 기반 인공지능 연구의 부흥기에 접어 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1969년 마빈 민스키와 세이무어 페퍼트는 저서를 통해 퍼셉트론은 AND 또는 OR 같은 선형 분리가 가능한 문제는 가능하지만, XOR문제에는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을 수학적 증명으로 발표했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방부 DARPA는 AI 연구자금을 2천만달러를 전격 중단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또한 영국의 라이트힐 경의 영국의회에 “폭발적인 조합증가(Combinational explosion)를 인공지능이 다룰(Intractability)수 없다” 라고 보고함으로써, 사실상 인공지능에 대한 대규모 연구는 중단되어 다시 한번 암흑기에 접어들게 됩니다.

피셔/피어슨

1970년대 이후 대부분 기업은 R&D의 방향을 실용적인 통계기술에 집중하게 됩니다. 현대통계학은 1900년대 피셔/피어슨을 선두로 시작하여, 영국의 조지 박스, 일본의 다꾸치 같은 학자들의 노력으로 기술 분석의 역사 발전하게 됩니다. 이들은 실험계획법 및 통계 분석기술로 제조 품질/생산효율 향상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였습니다.
이 개념은 데이터마이닝이라는 이름으로 산업에 비효율성을 해결하는 도구로 현재까지 사용되어왔고 빅데이터 기술의 근간이 되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한동안 잠잠했던 인공지능 연구는 1980년대 산업계에 전문가 시스템이 도입되며 본격적으로 확산하게 됩니다. 전문가 시스템은 1)지식과 경험의 데이터베이스화 2) 의사결정 추론엔진 3) 사용자 인터페이스로 구성되어있는데, 이 당시 추론엔진 기술은 베이즈(Bayes)기반 확률적 방법과, 또 다른 접근법으로 0과 1 사이에도 여러 가지 값을 가질 수 있는 퍼지(Fuzzy)이론을 통해 다중 값 논리방법을 이용하는 방법이 주로 활용되었습니다.
퍼지전문가 시스템은 1975년에 영국의 런던대학 에브라힘 맘다니 교수가 증기기관 제어 적용에 성공하여, 이때 적용된 맘다니 기법을 위시하여 퍼지 전문가 시스템이 한동안 인공지능을 대표하는 기술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당시 미국의 500대 기업 절반이상이 전문가시스템을 사용했고 지속적인 투자를 한동안 받았습니다. 하지만 방대한 관리방안과 투자대비 효용성의 한계가 노출되어 인공지능의 연구는 약해지고, 1993년 미국부터 대부분 연구방향은 슈퍼컴퓨터와 시뮬레이션 분야로 연구방향을 전환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인공지능의 암흑기에서도 리처드 밸벨만 등이 주창한 기술 분석의 역사 기계제어를 위한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 조지 박스와 일본의 품질 연구가들이 주창한 실험계획법 및 통계적 공정(품질) 기법들이 산업 분야에 활용되어왔습니다. 반면 딥러닝의 기초모델인 역전파 등의 획기적인 AI 연구들이 발표는 되었지만, 컴퓨터 성능 및 제한적인 활용, 머신러닝 알고리즘으로 대체되는 등 여러 제한으로 인하여 세상에 주목 받지 못하고 사장되어 갔습니다. (역전파 관련 연구는 훨씬 전에도 발표됨이 나중에 확인되었습니다.)

심층신경망 기술 인간의 뇌(인지능력)를 모방하다, 딥러닝

힌튼교수

하지만 이런 암흑기에도 기존에 수학적으로만 증명된 심층신경망을 실질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컴퓨터 성능과 알고리즘 개선은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서 계속적으로 이루어져왔습니다. 2000년대에 이르러 힌튼교수의 Deep Belief Network를 기반으로 심층신경망(딥러닝) 기술이 실용화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로센블래트가 옳았고 민스키가 틀렸다는 게 증명되는데 50년이 걸렸습니다.)
힌튼교수, geoffrey hinton

특히 Deep-CNN(Convolution Neural Network: 합성곱신경망, 이미지 인식/분류 특화모델)은 이미지 인식 성능 평가에서 2011년에는 26%인식 오류율을 보였으나, 2015년4년만에 3.5%로 개선하는 괄목할 성과를 보였습니다. 이를 기점으로 전문가들 사이에서 신경망 기반 인공지능(딥러닝) 기술이 재조명되게 됩니다.
일례로 이렇게 딥러닝의 가능성이 증명되자 2014년 구글은 딥마인드 테크놀로지 사(DeepMind Technologies: 영국 런던에서 설립되었으며 강화학습 특화된 회사)를 4억달러에 인수했습니다.
그 이후 ‘16년 알파고1.0 (16만 기보 지도학습기반 심층강화학습과 확률적 샘플링기반 의사결정)이 이세돌을 이기고. ‘17년 2.0(비지도학습 소량데이터 기반 자가학습)으로 커제 및 탑클라스 바둑기사들에게 승리하면서, 인공지능(AI)기술이 일반인들에게도 확실히 인식되고, 완전히 재조명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현재까지 실증화된 인공지능(AI)기술은 CNN, RNN(Recurrent Neural Network : 음성과 문자분야에 강한 신경망)입니다. 최근에는 ‘17년 이안 굿펠로우의 GAN(Generative Adversarial Nets: Image를 만들어내는 모델과 다양한 모델간에 서로 대립(Adversarial)하며 성능 개선하는 학습개념(낮은 수준의 사람처럼 글쓰기,노래하기 등이 가능)이 현재 기술 분석의 역사 인공지능(AI)를 이끌고 있습니다. 또한 실용성이 없어 보이던 추론(Reasoning) 연구 또한 조금씩 성과를 보이고 있으며, 이형의 정보학습을 새로운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전이학습(transfer learning) 연구 역시 급속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딥러닝의 등장 이후 인공지능은(AI) 빠른 발전을 보이고 있습니다만 2018년 어떤 기술이 화두가 될지 전혀 예측할 수가 없을 정도로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현 인공지능의 강자들, 결국 데이터 싸움

알파고 대 사람 바둑 게임

B2C산업의 인공지능 기술 분석의 역사 적용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구글과 페이스북은 딥러닝을 활용한 얼굴 인식 기술에서 99.96%와 97.25%의 정확도를 확보 하였고, 아마존은 2014년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로그인 시 물류창고에서 배송절차를 시작하는 결제예측배송 특허를 등록했습니다.
또한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런던(UCL), 셰필드대,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의 공동 연구의 결과물로 만들어진 인공지능 판사는 79% 정확도로 재판의 결과를 예측 하였으며, IBM AI 로스는 파산관리변호사로 공식선임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미국종양학회의 IBM왓슨의 대장암/직장암 진단 정확도는 이미 90%가 넘는 수준이며, 테슬라의 AutoPilot은 인간 개입을 배제한 자율주행이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한편으로 B2B산업에서 인공지능 적용을 살펴 보면, GE사의 Brilliant Factory의 Predix는 다양한 기계학습, 딥러닝 기반 데이터분석기술로 가동중지를 예방하는 의사결정을 내리고, 최적의 생산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멘스(Siemens)의 스마트팩토리는 매일 5,000만건으로 제조공정의 75%를 자동으로 작업을 지시하며, 인력의 개입을 최소화 시키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현재 인공지능 강자들은 각자 도메인특성과 빅데이터 기반을 중심으로 인공지능(AI) 분야의 우위를 선점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삼성은 전자(가전, 반도체, 무선), 중공업, 증권, 호텔, 바이오로직스 등이 대규모의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으며, 특히 전자중심의 제조데이터는 거의 독보적인 수준입니다. 독보적인 제조 데이터에 인공지능이 접목된다면 혁신적인 생산성 향상을 가져 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며, 현재도 요구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인지한 글로벌 선진국가에서는 국가 단위의 리쇼어링 정책을 발표하고 제조업의 중흥을 위한Industry 4.0, 4차 산업혁명 등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또한 제조가 주력 사업 분야가 아닌 IBM 왓슨도 스마트팩토리에 분야에 뛰어들고 있는 점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기술 분석의 역사 데이터 싸움인 인공지능(AI)시대에서 제조업이 강한 대한민국의 유리한 전쟁터는 “AI Technology in Smart Factory” 라고 생각해보는 것도 어떨까 합니다.
그럼 다음 호에서는 스마트팩토리에 적용된 인공지능(AI)활용에 대해 살펴보고 실제 인공지능(AI) 기술적용의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해 공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해당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로 기고자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   해당 콘텐츠는 사전 동의없이 2차 가공 및 영리적인 이용을 금하고 있습니다.

일본 중고교 역사교과서 내 한반도로부터 전파된 문화가 고대부터 근대 메이지시기를 거쳐 오늘날의 독도문제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관련된 관련 기술 내용을 분석했다 . 이를 통해 일본 정부의 왜곡된 역사인식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

1. 일본 중학교 역사교과서의 고대 한반도 관계 기술 분석 – 서보경 ( 한성대 )

현재 일본에서 사용하는 중학교 역사교과서 중 교육출판과 대표적 우익교과서인 육붕사 교과서의 고대사 관련 기술 내용을 살펴본 결과 한반도에서의 인간 ( 집단 ) 의 이주와 이를 통한 문화 전파를 중국 문화의 전달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차원에 그쳤으며 야마토정권의 성립과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도래인의 활동을 설명하는데 치중하여 그 이전과 이후의 활동이 분리되어 설명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

2. 明成社 일본사 교과서의 한반도 인식 – 송완범 ( 고려대 )

‘ 일본회의 ’ 라는 일본의 극우보수단체 관계자들이 참여하여 만든 출판사인 명성사 간행의 교과서로 고교 역사 교과서 가운데 < 독도 >를 명확히 일본의 영토라고 최초로 기술한 『 最新 日本史 』 를 검토했다 . 특히 한반도 관련 내용을 살펴본 결과 영토문제에 대해서는 현재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 정부의 입장을 충실히 반영하였고 , 근대 개념인 국민과 국가에 대한 인식을 고대국가 시절부터 찾고 있는 모순적 행보를 보이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

3. 山川出版社 일본사 ‧ 세계사 한국관계 기술 분석 – 현명철 ( 서울대 )

일본 내 현행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가운데 시장 점유율이 가장 상위인 山川出版社 의 『 詳說 日本史 B 』 ㆍ 『 詳說 世界史 B 』 에서 근대 한일 ( 조일 ) 관계를 다룬 기술을 중점적으로 살펴 보았다 . 그 결과 특히 메이지 초기 조선과의 관계에 있어 일본의 기술 분석의 역사 호의를 조선이 쇄국으로 거절하였다는 책임 전가론과 이로 말미암아 ‘ 정한론 ( 征韓論 )’ 이 발생하였다는 설명은 처음부터 왜곡되어 지금까지 내려오는 오래된 인식이었으며 , 조일수호조규 ( 강화도조약 ) 에 대해서도 일본이 조선을 강제로 개항시킨 것으로만 설명해왔지만 , 실제로 조선은 이를 우호관계의 회복으로 간주했다는 점을 간과하는 등 중대한 오류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

4. 일본역사교과서의 독도 기술과 영토 교육 – 나행주 ( 건국대 )

현재 일본의 교육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는 초중고 교과서를 대상으로 일본의 영토교육 특히 독도 ( 일본명 다케시마 [ 죽도 ]) 에 대한 서술 내용을 검토했다 . 무엇보다도 아베 정권 하에서 보다 강화된 교과서 검정제도와 독도 관련 기술 내용의 관련성 , 학습지도요령과 동 해설서의 관련성 , 해설서 내용과 검정기준과의 관련성 , 나아가 영토교육 강화를 추진하는 아베 정권의 내각부 , 문부성 , 외무성 , 독도 관련 지자체 시마네현 , 정부 산하 및 민간의 각 기관들이 유기적 · 구조적 관련성 속에서 추진되는 영토교육의 메카니즘을 확인했다 .


0 개 댓글

답장을 남겨주세요